'Sid Vicious'에 해당되는 글 3

  1. 2010/06/01 Punk77 SID VICIOUS - Sid Sings(1979, Virgin-German Pressing)
  2. 2007/05/12 Punk77 THE SEX PISTOLS
  3. 2007/05/08 Punk77 SIOUXIE & THE BANSHEES
1978년에 Max's Kansas City에서 녹음된 음원들을 수록한 LP로 그의 사후에 Virgin에서 공식적으로 발매가 되었다. 슬리브에 타이틀이 없고 LP라벨 위쪽에 기타 스와스티카 문양이 들어간 UK반과 달리 독일반에서는 타이틀이 추가되고(스티커가 아니다.) 법적으로 사용금지가 되어 있는 스와스티카 문양이 삭제되어 있다.

스튜디오 작업의 결과물로서 그의 보컬은 당대의 비슷비슷한 펑크 보컬리스트들과는 차이가 있는 로커빌리의 펑크식 해석에 가깝다. 악기연주나 보컬 모두 시작과 동시에 프로페셔널로 건너뛴 경우 치고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향후가 기대되는 재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다시 한번 아쉬움을 갖게 한다. - 말많은 그의 베이스 연주실력조차 구술된 증언과 판단 불가능한 조악한 음질의 부틀렉들이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전부이다. 안티 마케팅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던 밴드 내부의 증언들을 뒷받침 해줄만한 자료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은 여러 형태의 부틀렉 혹은 정규 레코드로 재발매 되기도 했는데 여러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최초 레코드 이상의 음질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Chatterbox"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10/06/01 13:51 2010/06/01 13:51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1211

Post Comments

Serect
Submit
1975년 여름, Malcolm McLauren의 진두지휘아래 출발했다.
그룹은 잠시동안 밴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Wally Nightingale을 리드 보컬리스트로 맞아 Swank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Sex Pistols로 개명하면서 Johnny Rotten(vocals), Steve Jones(guitar), Paul Cook(drums), Glen Matlock(bass)의 안정된 라인업을 유지했다.
 
1976년, 런던을 중심으로 부정기적인 연주활동을 갖는데 Malcolm McLaren이 상업적으로 잘 포장한 헤어스타일, 찢어진 티셔츠, 안전핀 등의 펑크패션은 금새 10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밴드의 공연은 항상 폭동이 끊이질 않았는데 100 Club Punk Rock Festival에서 Damned의 공연중 시드 비셔스가 날린 맥주병이 깨지며 한 소녀가 눈이 머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점에 달한다.(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사실이 불분명하다. 또 하나의 시드 신화라는 얘기도 있다.)

밴드는 곧 EMI와 계약하고 "Anarchy In The UK"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한편 Sex Pistols는 런던의 주말 TV연예 프로그램인《Today》에 출연해 네개의 철자로 된 말들을 마구 내뱉는데 이 사건은 다음날 런던의 신문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기사화 된다.(섹스 피스톨즈 TV에서 'FUCK'이라고 하다!)
이로 인해 그룹의 'Anarchy' 투어는 가느 곳마다 취소되기 일쑤였고, 레코드 판매상들은 그들의 앨범 판매를 거부했다. "Anarchy In The UK"는 차트 38위를 기록했으나 오래지 않아 EMI와의 계약을 해지당한다. 1977년, Matlock이 Sid Vicious로 교체되면서 다음달 버킹검 궁전 앞에서 A&M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1주일 후 A&M은 계약을 취소하고 Malcolm은 단 1주일만에 계약금 40,000파운드를 챙긴다.
이후 당시에는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Virgin과 계약을 맺고 "God Save The Queen"을 여왕의 즉위 25년 기념일인 Queen's Jubilee에 발표한다. 라디오 주간 방송들은 일제히 이 곡을 방송금지 시켰지만 NME차트 1위를 기록하고 Johnny Rotten과 그룹 멤버들은 길거리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세번째 싱글 'Pretty Vacant'(Glen Matlock의 작품인)는 금새 Top10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Holiday In The Sun"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데뷔앨범《Never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발매된다.

이후 실패 투성이의 미국 투어와 함께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작에 들어가는데 멤버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78년 Rotten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매니저인 Malcolm은 그는 해고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한편 Malcolm은 브라질로 이동해 전직 열차 강도였던 Ronnie Biggs와 필름 제작을 계속한다. Sid는 헤로인 중독 문제로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Jones와 Cook만이 작업에 참여했다. Malcolm은 Ronnie Biggs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싱글 "God Save The Pistols"를 녹음하는데 후에 'No One Is Innocent(A Punk Prayer)'로 제목이 바뀐다. b-side에는 Frank Sinatra의 고전을 커버한 Sid Vicious의 "My Way"를 수록한다.

Malcolm의 필름은 감독 Jullien Temple에 의해《The Great Rock'n' Roll Swindl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필름이 완성되면서 Sid는 그룹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Eddie Cochran의 커버인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10월 12일에는 Sid의 여자친구 Nancy Spungen이 첼시 호텔에서 칼에 찔린채 죽어 있었고, Sid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Sid는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동안 헤로인과다 복용으로 고생하다 1979년 2월 2일 아침 시체로 발견된다.

Virgin Records는 이후《Flooging Dead Horse》(헛수고하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고 1986년 Johnny Rotten은 전 멤버들과 매니저였던 Malcolm과의 법정 소송에서 승리해 잃어버린 이름과 명예를 되찾으며 Sex Pistols와 완전히 결별했다.

차대선 (2004-07-21 02:07:50)
섹스피스톨즈..너무좋다.

조이라이더 (2004-12-05 23:13:49)
aituk

이지혜 (2005-01-01 00:09:38)
시드가 베이스를 잘치는 줄 알았다.//////

박인화 (2005-05-07 08:49:43)
섹스 피스톨즈의 진가는 그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엿 같은 시대 상황에 온몸으로 저항한 그 정신이다. 그들의 저항 정신은 수많은 후배 락밴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그리고 아직도 그 정신은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정운 (2006-05-31 17:11:36)
시드잘치진않지만 센스잇다 ㅋㅌㅋ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5/12 19:40 2007/05/12 19:40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416

Post Comments

Serect
Submit
Siouxsie Sioux와 Steven Severin은 초창기 섹스 피스톨즈 를 따라다니던 악명높은 그루피들인 Bromley Contingent의 일원이었다.
Siouxsie는 100club Punk Festival에 참여해 "The Lord's Prayer"를 길게 편곡해 부르는데 당시 드러머는 시드 비셔스였다.

Siouxsie는 섹스 피스톨즈가 출연해서 'fuck'을 포함한 온갖 방송 금지용어를 내뱉어 유명해진 연예정보 프로그램<Today>에 출연해 사회자인 Bill Grundy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 사건이 있은 한달후 Siouxsie는 자신의 밴드인 Banshees의 멤버를 모으는데 Pete Fendon(guitar), Steve Severin(bass), Kenny Morris(drums)가 여기에 참여한다.
Siouxsie는 나찌의 비주얼과 고딕풍의 블랙 메이크업, 그리고 가슴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는다. 1977년 중반에는 Fendon이 John McGeogh로 교체되고 그룹은 Johnny Thunders and Heartbreakers의 지원을 받으며 BBC의 디스크 자키인 John Peel Session을 위해 레코딩을 하기도 한다.
1978년, 그룹은 Polydor과 계약하고, 첫번째 싱글인 "Hong Kong Garden"을 발표해 UK Top10을 기록한다. 곧이어 Steve Lillywhite가 프로듀스한《The Scream》이 발표돼 "The Staircase(Mystery)"와 "Playground Twist"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다음 앨범인《Join Hands》까지 성공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프로모션 투어 도중 Morris와 McKay가 그룹을 떠나고 전 Slits의 멤버인 Budgie와 Cure에서 온 Robert Smith가 임시멤버로 가입한다. Siouxsie의 나찌이미지의 영향은 "Mittageisen(Metal Postcard)"에서도 다시 한번 나타나며 Top 50을 기록하고 "Happy Hpuse"와 "Christine"도 멜로딕한 사운드로 큰 성공을 거둔다.

《Kaleidoscope>의 성공이후 그룹은 구 소련내에서의 공연을 포함한 대규모 월드 투어를 기획한다. 또다른 Top 10앨범인《Juju》이후 멤버들의 다른 활동들이 시작되는데 Siouxsie와 Budgie는 The Creatures를 결성해 앨범 발매와 함께 Top10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며, Smith와 Severin은 Glove라는 그룹으로 성공을 거둔다.《A Kiss In The Dreamhouse》의 앨범 녹음을 위해 다시 모인 그룹은 1983년 가을, 이탈리아 공산당을 위한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후 비틀즈의 곡을 편곡한 "Dear Prudence"는 UK 차트 3위까지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1984년에는 "Swimming Horse"가 다시 한번 히트를 하고, 약간의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Clock DVA에서 활동하던 John Carruthers가 잠시 가입하나 곧 John Klein으로 교체된다.

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앨범들은 고정적인 팬들의 확보로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스튜디오 작업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Through The Looking Glass》는 앨범 전체를 커버곡으로 채운 흥미로운 앨범이기도 하였는데 Bob Dylan의 커버곡인 "This Wheel's On Fire"는 UK Top20을 기록한다. 음악적인 변신을 한《Peepshow》역시 타협을 모르는 직선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고, 1991년에는 댄스곡 "Kiss Them For Me"와 《Superstition》으로 다시 한번 차트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전히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하며 이따금씩 차트에 등장하기도 한다.
(Siouxsie &The Banshees는 98년 2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핀을 꽂고 머리를 염색한 가수들과 계약하려 한다. 그들은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 펑크록의 영광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라며 그룹의 해산을 선언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시드 비셔스가 사망한 날이었다.)  

조이라이더 (2004-01-13 21:22:49)
최고최고

도일만 (2004-08-06 05:50:52)
펑크록이라고 보긴엔 좀 뭐하죠..

조이라이더 (2004-12-05 23:14:52)
오~베이비오~ 펑크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5/08 13:40 2007/05/08 13:40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405

Post Comments

Serect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