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에 해당되는 글 6

  1. 2010/07/13 Punk77 THE PALEY BROTHERS - S/T(1978, Sire)
  2. 2009/05/01 Punk77 TOY LOVE - Death Rehearsal(1980)
  3. 2009/04/24 Punk77 DR.FEELGOOD - Sneakin' Suspicious(1977)
  4. 2009/03/22 Punk77 THE BEAT - U.S.A.(1979)
  5. 2009/03/17 Punk77 RACHEL SWEET - B-A-B-Y(1978)
  6. 2009/03/16 Punk77 NEW YORK DOLLS - Personality Crisis(1982) (2)
Andy Paley와 함께 Paley Brothers를 결성하기 전 Jonathan Paley는 70년대 초 뉴욕에서 Mong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뉴욕펑크의 씨앗을 뿌렸다. Televison, Heartbreakers 같은 밴드들을 중심으로 뉴욕펑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 보스톤에서는 Paley 형제의 주도 하에 보스톤 펑크의 또 다른 개척자 Nervous Eaters의 멤버들, 1972년에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 보스톤의 프로토 펑크밴드 The Sidewinder의 기타리스트 Eric Rose 등이 참여한 파워팝밴드 Paley Brothers가 탄생한다.
Jonathan은 Heartbreaker의 멤버가 될 뻔했지만 드러머 Jerry Nolan의 반대로 펑크 수퍼그룹의 탄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Andy는 Jerry Harrison과 함께 Catfish Black이라는 밴드에 있었으며 Jerry Harrison은 Modern Lovers를 거쳐 Talking Heads를 결성했다.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팝앨범으로 기획된「The Paley Brothers」(1978)는 레코드사의 바램대로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지만 언더그라운드 팝/록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으며, 보스톤의 파워팝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70년대 초중반, 메이저에서 정체기를 보내는 듯 했던 팝밴드들은 펑크시기를 전후로 부활하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록 시대에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는데 이는 50~60년대 팝과 모던팝의 절묘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The Paley Brother 같은 언더그라운드 팝밴드들의 생명력과 실험정신에 기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Jonathan은 Paley Brothers 이후 Brian Wilson(ex Beach Boys)이나 Jerry Lee Lewis 같은 뮤지션들과 보스톤/뉴욕 출신 펑크밴드들의 프로듀서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이 앨범은 후에 일본에서만 CD로 소량 재발매되었다.

글출처
http://www.punkblowfish.com/BlowfishPaley.htm

"Come Out And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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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zzcocks의 인기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인디록/팝은 70년대 말부터 영어권과 그 예속지역을 중심으로 언더그라운드 신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The Dunedin Sound라 불리우던 뉴질랜드 언더그라운드신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뉴질랜드 메이저 펑크신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Buzzcocks의 영향으로 시작된 뉴질랜드 펑크는 개러지 펑크와 60년대 팝, 네오 사이키델릭의 영향을 받은 Dunedin의 펑크밴드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이 영향을 받았던 영/미의 컬리지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The Dunedin Sound가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펑크밴드 The Enemy 출신의 Chris Knox는 밴드 해산 후 Toy Love를 결성해 뉴질랜드에서 인기를 얻은 후 활동범위를 호주까지 넓혔지만 더 이상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단 한 장의 앨범 「Toy Love」(1980)를 발표한 후 밴드는 해산하고 Chris Knox와 Alec Bathgate는 자신들의 뿌리 중 하나인 Lo-Fi와 미니멀리즘이 극대화된 듀오 Tall Dwarfs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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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1 16:50 2009/05/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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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ko Johnson이 마지막으로 참여하게 되는 앨범 「Sneakin' Suspicious」(1977)는 아쉬운 앨범으로 기억된다.

오소독스한 멜로디와 리듬감으로 Dr. Feelgood 사운드의 기타팝적인 핵심요소를 쥐고 있었던 공동작곡자 Wilko의 탈퇴는 밴드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후 Nick Lowe의 지원하에 발표된 R&B적 요소들이 많이 줄어든 깔끔한 앨범들은 몇곡의 싱글히트곡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초기의 사운드에서 많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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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4 18:21 2009/04/2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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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개러지/파워팝 트리오 The Nerves가 70년대말에 해체한 이후 재능있는 3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Peter Case는 파워팝 밴드 The Plimsouls로, Jack Lee(그는 후에 Blondie가 크게 히트시킨 "Hanging On The Telephone"을 작곡했다. 그 곡은 Nerves의 EP에도 수록됐다.)는 솔로로, Paul Collins는 The Beat를 결성해 상업적으로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영국의 스카밴드 The Beat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English Beat으로 바꿨다.)

LA의 언더그라운드 파워팝신에서 70년대말부터 많은 밴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데에는 The Nerves나 The Beat 같은 밴드들의 영향이 컸다.  The Knack 같은 경우는 메이저에서 커다란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어찌 보면 Doug Fieger와도 비슷해 보이는 외모의 Paul Collins와 스트레이트한 로큰롤 성향의 The Beat의 사운드는 The Knack과도 많이 비교가 되곤 했다.

Paul Collins는 데뷔앨범 「The Beat」(1979) 이후 Paul Collins' Beat 이라는 이름으로 한장의 앨범을 더 내고 밴드를 해산했다. 그리고 The Beat의 이름으로 밴드를 재결성한 후 한장의 EP를 더 발표하지만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밴드도 다시 해산하게 된다.
Paul Collins는 90년대 이후 Paul Collins' Beat의 이름으로 밴드를 재결성해 투어 위주의 활동을 하면 아직까지 음악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오피셜사이트를 방문하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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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2 23:38 2009/03/2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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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의 나이로 지역 노래자랑에 입상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Rachel Sweet은 6살이 되면서 본격적인 프로뮤지션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4살 때는 내쉬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몇개의 컨트리 싱글들을 발표하고 Liam Sternberg의 눈에 띄면서 Stiff Records 로 픽업되어 15살에 데뷔앨범 「Fool Around」(1978)을 발표한다.

Elvis Costello, The Damned, Ian Dury & The Blockheads 같은 거물급 펑크뮤지션들의 앨범들을 발매하던 Stiff의 행보를 기억해 볼 때 Rachel Sweet의 레코드 데뷔는 당시로서는 의외의 행보인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컨트리, 뉴웨이브, 펑크, 펍록을 넘나드는 독특하고 원초적인 사운드의 데뷔앨범은 Rachel Sweet을 Stiff에서도 가장 개성있는 뮤지션으로 돋보이게 했음에 틀림없다. 그녀의 소녀이미지(로리타라고 표현하는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도 그러한 경향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이 앨범은 Brinsley Schwartz, The Rumour, The Records 등 Stiff 소속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제작되었으나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Stiff 소속 아티스트 들에게 대중적 성공 운운하는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이긴 하다.) 그리고 앨범 발표 이후에는 The Records를 백업밴드로 Be Stiff Tour를 가지기도 했다.

지나치게 일찍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탓일까. Rachel Sweet은 80년대 초반에 음악계를 떠나며 이후 새로운 레코드 발표 없이 몇개의 뮤지컬에 간간히 이름을 올리는 활동을 하면서 배우로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1962년생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감안할때 그녀만의 음악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큰 욕심은 아닌 것 같다.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bobbyshred.com/rachelsweet.html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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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00:56 2009/03/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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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프랑스의 Kamera Records에서 발매된 12인치 45rpm EP로 1986년에 UK Kamera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했다. 총 4곡의 데모가 담겨 있으며 오리지널 레코딩은 1972년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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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6 23:11 2009/03/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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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unXLess 2009/03/23 21:30

    소닉유스걸로 처음들었고, 원곡으로만 알았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TRASH듣고 공황상태에 빠져서

    '이런건 펑크도 아니고 뉴욕돌즈를 멀리하자'

    다짐했었는데

    Lonely planet boy 같은 경우는 정말 미친듯이 들었습니다.

    • Punk77 2009/03/24 02:39

      그 벨벳골드마인인가 거기서도 여자보컬 있는 어느 밴드가 연주하지 않았었나요.
      Lonely Planet Boy는 저도 정말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뉴욕돌즈 최고의 곡이자 정말 명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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