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s Kansas City에 출연했던 뉴욕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첫번째 컴필레이션으로 클럽의 자체 레이블인 Ram을 통해 발매됐다. 뉴욕펑크나 개러지펑크라는 명칭은 펑크운동 사후에 정의된 것으로 당시 이들을 구분화하는 특별한 움직임이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96년에 CD화 되면서 두 번째 시리즈에 등장하는 밴드들의 곡을 포함한 4곡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Jayne County에 의해 Rock And Roll Hall of Shame에 입성한 Johnny Ramone에 관한 일화 하나.
"NYC 펑크시절로 돌아가 조니와 함께 차에 있었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빨간불 신호등에 차가 멈추었고 막 흑인 아이 하나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Johnny는 비웃으며 "저 검둥이(nigger)를 받아버려!" 라고 했다. 나는 다시는 그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 신경쓰지 말라고!
핀란드의 글램펑크밴드 Smack의 첫 번째 앨범으로 1984년에 핀란드에서 이미 발매된 적이 있는 앨범이다. 첫 번째 앨범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LA로 활동무대를 옮겼지만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90년대 초에 각자 핀란드로 돌아온다. 핀란드에서 Hanoi Rocks의 오프닝 무대에 출연하고 Sam Yaffa와 데모를 만들기도 했지만 글램메탈이나 헤어메탈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LA에서의 짧은 활동은 오히려 미국의 그런지/개러지/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었다.(Nirvana가 라이브에서 커버하는 "Run Rabbit Run"의 주인공은 이들이다.)
1996년에는 보컬리스트 Claude가 심장이상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글들을 모은 시집이 발표되기도 했다.
1977년 프랑스에서 발매된 첫 EP로 A-side에는 1974년 뉴욕의 Electric Ladyland에서 녹음된 "Hey Joe(Version)"가 그녀의 시 "Sixty Days"의 낭독 뒤에 수록되어 있고, B-Side에는 1977년 CBGB에서 녹음된 "Radio Ethiopia"의 라이브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Apple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The Beatles의 "Hey Bulldog"을 커버하고 있다. 프로듀서 Richard Perry가 참여한 초기 3장의 앨범들 중 (그가 추가한 브라스와 현악기 세션이 멤버들을 감동시키지는 못했지만)그의 최고의 앨범이라는 공식홈페이지의 소개가 있다.
June Millington이 밴드를 떠나고 Suzi Qautro의 형제인 Patti Quatro가 들어왔으며, 드러머는 Fanny의 전신이었던 The Svelts에서 같이 활동했던 Brie가 복귀했다. 키보드/보컬리스트 Nickey는 이 앨범 발표 후 1974년 말에 밴드를 떠나고 Brie가 결혼하면서 드러머는 Cam Davis로 다시 교체됐다. Fanny는 Patti가 주도하며 1975년 초까지 활동했지만 Cam Davis가 탈퇴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최초의 여성 로큰롤 밴드는 활동을 중단했다. (출처: http://www.metalmaidens.com/fanny.htm)
Casablanca로 레이블을 옮기면서 로큰롤의 섹슈얼한 이미지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밴드가 사분오열 되면서 발매된 음반이지만 싱글 "Butter Boy"('느끼한 녀석'이 아니라 David Bowie에 대한 Jean의 애정의 표시에 대한 곡이라고 한다. 보위는 1999년에 롤링 스톤을 통해 '아메리칸 록의 가장 중요한 여성 밴드 중 하나가 흔적도 없이 묻혀져 왔다. 그들은 바로 Fanny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는 미국시장에서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밴드의 공식홈페이지 디스코그래피에 이 앨범이 누락되어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앨범에 대해 오리지널멤버들은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듯 하다. 그러나 싱글히트곡으로 Fanny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뒤이어 등장하는 The Runaways 같은 밴드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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